건강 일반

채식, 육식 — 정반대 식단 — 같은 병을 고친다?

서인근 박사 2026. 5. 16. 19:36

 

Nutrition · Essay 건강 · 영양

채식육식,
정반대 식단이
같은 병을 고친다고?

한쪽은 풀만 먹고, 한쪽은 고기만 먹는다. 그런데 두 식단 모두 심장병·당뇨·관절염을 호전시켰다는 보고가 따로따로 쌓이고 있다. 정반대의 길이 어떻게 같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01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성 식품만 먹는 식이요법 (plant-based diet, 채식)과 동물성 식품만 먹는 식이요법 (carnivore diet, 카니보어)은 누가 봐도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의학 논문과 환자 사례에서 묘한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두 식단 모두 같은 질병을 좋아지게 했다는 보고가 따로따로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채식
심장이 안 좋던 환자가 풀만 먹어서 좋아졌다는 보고.
육식다른 심장 환자는 고기만 먹어서 좋아졌다는 보고.
채식
당뇨 환자가 채식으로 혈당이 잡혔다는 보고.
육식다른 환자는 탄수화물을 끊고 고기만 먹어서 잡혔다는 보고.
채식
관절염 환자가 채식으로 통증이 줄었다는 보고.
육식다른 관절염 환자는 채소를 빼고 고기만 먹어서 통증이 줄었다는 보고.

같은 병을 정반대 방법으로 고친다는 말이 정말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시도입니다.

02
 

세 가지 질병에서 일어나는 일

먼저 양쪽이 어떤 근거로 자기 식단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지 정확히 살펴봐야 합니다. 질병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혈관 질환 (cardiovascular disease)

채식 측
Plant-based
식이섬유 (dietary fiber)와 식물성 스테롤이 풍부한 식단은 혈중 LDL 콜레스테롤 (LDL cholesterol, '나쁜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서, 결국 관상동맥 질환 (coronary artery disease)과 심근경색 (myocardial infarction)의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가 다수 발표되어 있습니다.
육식 측
Animal-based
정제 탄수화물과 일부 식물 성분(렉틴 lectin 같은 '항영양소 anti-nutrients'로 불리는 물질)을 끊으면 인슐린·중성지방·혈압이 동시에 떨어지고, 동맥경화의 진짜 원인인 대사증후군 (metabolic syndrome)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 입장은 대규모 임상시험보다는 단기 관찰과 환자 사례에 더 기반합니다.

제2형 당뇨병 (type 2 diabetes)

채식 측
Plant-based
식이섬유가 장에서 당의 흡수를 천천히 만들고, 동물성 지방 섭취를 줄여 근육과 간에 낀 지방을 줄임으로써 인슐린 감수성 (insulin sensitivity, 인슐린에 대한 몸의 반응성)이 좋아진다고 봅니다. 여러 임상시험에서 식물성 식단이 HbA1c (당화혈색소, 3개월 평균 혈당)를 의미 있게 낮춘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육식 측
Animal-based
논리가 단순합니다 — 혈당을 올리는 탄수화물 자체를 거의 안 먹으니 식후 혈당 급등 (postprandial glucose spike)이 일어나지 않고, 인슐린이 거의 필요 없어지면서 인슐린 저항성 (insulin resistance)이 빠르게 개선됩니다. 단기 효과는 분명히 관찰되지만, 장기 데이터는 아직 부족합니다.

자가면역 질환과 만성 염증 (autoimmune disease & inflammation)

채식 측
Plant-based
폴리페놀 (polyphenol), 플라보노이드 (flavonoid), 카로티노이드 (carotenoid) 같은 식물 화학물질 (phytochemicals, 파이토케미컬)이 산화 스트레스 (oxidative stress)를 낮추고 CRP (C-reactive protein, 염증 정도를 보여주는 혈액 지표)를 떨어뜨려, 류마티스 관절염 (rheumatoid arthritis) 같은 질환의 증상을 완화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육식 측
Animal-based
정반대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일부 환자에게는 글루텐 (gluten), 렉틴, FODMAP 같은 식물성 성분 자체가 면역계를 자극하는 방아쇠입니다. 이 성분들을 차단하자 크론병 (Crohn's disease)이나 일부 관절염의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환자 사례 보고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정반대 식단이 같은 병을 고친다면
길이 같거나, 아니면 병이 같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03
 

그렇다면 왜 둘 다 효과가 있는가?

이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은 두 가지 가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두 가설 모두 최근 연구로 부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설 1 · Hypothesis 1
겉모습은 달라도 길은 같다 — '공통 메커니즘' 가설

겉으로는 정반대로 보이는 두 식단이, 사실은 몸 안에서 비슷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가장 분명한 공통점은 세 가지입니다.

 

i
칼로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두 식단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을 강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섭취 칼로리가 줄어듭니다.
ii
초가공식품이 빠진다
빵·과자·청량음료·가공육 같은 초가공식품 (ultra-processed food)이 채식이든 카니보어든 자연스럽게 식단에서 통째로 사라집니다.
iii
대사 회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인슐린·중성지방·내장지방 (visceral fat)이 줄고, 세포의 영양 감지 회로 (nutrient-sensing pathway: mTOR, AMPK, SIRT1)가 비슷한 방향으로 변합니다.
실제로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실린 2021년 종합 리뷰는 "다양한 다이어트가 체중 감량으로 이어지는 공통 경로는 결국 칼로리 제한 (caloric restriction)"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 Heymsfield SB 외, J Clin Invest, 2021

요컨대 들어가는 입구는 달라도, 몸이 거쳐가는 회복의 길은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가설의 요지입니다.

가설 2 · Hypothesis 2
같은 병이지만, 사람마다 원인이 다르다 — '환자 이질성' 가설

같은 진단명을 받았다고 해서 사람마다 병의 진짜 원인이 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밀영양학 (precision nutrition)의 출발점입니다.

권위 있는 의학지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는 2018년 리뷰에서 제2형 당뇨병을 "유전적으로도, 병의 메커니즘으로도, 임상 양상으로도 이질적인 (heterogeneous, 사람마다 다른) 질환"으로 규정했습니다. 같은 진단명이지만 그 속에는 사실 여러 종류의 다른 병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대규모 PREDICT 임상시험은 더 직관적인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빵 한 조각에 대한 혈당 반응이 사람마다 극단적으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흰빵이 혈당을 폭발적으로 올리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혈당 반응에 맞춰 짠 맞춤 식단이 표준 지중해식 (Mediterranean diet)보다 HbA1c를 더 잘 낮춘다는 임상시험 결과도 뒤이어 발표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2024년 Nature Medicine에 실린 미국 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국립보건원)의 Link 연구진 실험입니다. 같은 사람이 채식과 케토 식이 (ketogenic diet)를 번갈아 했을 때, 두 식단은 면역계에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채식선천 면역 (innate immunity,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일반 방어 시스템)을 주로 활성화시켰고, 케토후천적 적응면역 (adaptive immunity, 살아가면서 학습하는 특이적 면역)을 활성화시켰습니다. — Link VM 외, Nature Medicine, 2024

다시 말해 두 식단은 분명히 다른 길을 가지만, 환자에 따라 어느 길이 더 필요한지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04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채식과 육식의 대립은 자주 이념적·도덕적 논쟁으로 번집니다. 그러나 생리학 (physiology)의 관점에서 보면, 두 식단은 대체 가능한 두 가지 도구에 가깝습니다.

한 환자가 어느 도구로부터 더 큰 이득을 얻을지는 그 사람의 유전형, 장내 미생물 (gut microbiome) 구성, 인슐린 분비 패턴, 염증 표현형 (inflammatory phenotype),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 꾸준히 지킬 수 있는 식단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옳은 식단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그리 좋은 질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

누구에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가?

원래 글에서 제기된 두 가지 가능성 — "두 식단의 치유 메커니즘이 사실은 같은 것일 수 있다""같은 병이라도 환자마다 원인이 달라서 서로 다른 식단이 각자에게 맞을 수 있다" — 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현대 영양 과학이 실제로 따라가고 있는 두 갈래 길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은 두 가설이 동시에 옳다는 쪽입니다.

그러니 채식이든 육식이든, 어느 한쪽을 절대적인 답으로 신봉하기보다는 자기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고, 그 패턴을 데이터로 만드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태도입니다. 좋은 식단은 정답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References

  • Heymsfield SB et al.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2021). "Dietary interventions for obesity: clinical and mechanistic findings." — 칼로리 제한이 다양한 다이어트의 공통 경로라는 점.
  • Link VM et al. Nature Medicine (2024). "Differential peripheral immune signatures elicited by vegan versus ketogenic diets in humans." — 채식과 케토가 서로 다른 면역 경로를 활성화.
  • Mutie PM et al.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 (2018). "Precision nutrition for prevention and management of type 2 diabetes." — 정밀영양학과 당뇨병의 이질성.
  • Ben-Yacov O et al. Diabetologia (2022). — 개인 맞춤 식이가 지중해식보다 우월하다는 임상시험.
  • Zeevi D et al. Cell (2015). — PREDICT 선행 연구, 식후 혈당 반응의 개인차.

면책 조항. 이 글은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개별 환자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식이요법(채식, 카니보어, 케토 등)은 영양 불균형, 약물 상호작용, 기저질환 악화 등의 위험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식단의 큰 변경이나 약물 조절은 반드시 본인의 의무기록을 아는 담당 의사 또는 임상 영양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인근  의학박사 | 외과 전문의 & 건강 콘텐츠 크리에이터

33년 수술실에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진짜 건강'을 연구합니다. 우리 몸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깨우는 생화학적 통찰! 여러분의 일상을 바꿀 실질적인 건강 정보를 내 가족을 위하는 진솔한 마음으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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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서인근 — 항문 & 전신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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