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 대사질환
복부 비만, 지방간 — 인슐린 저항성, 제2형 당뇨
탄수화물 · 지방간 · 인슐린 저항성, 그리고 제2형 당뇨로 이어지는 조용한 연결 고리
영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데이비드 언윈(David Unwin) 박사의 임상 경험과 최신 연구를 토대로
“쌀밥이 건강식인 줄 알았어요.” 어느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식탁 위 음식들을 가리키며 “여기 설탕이 몇 스푼이나 들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콘플레이크, 감자, 흰쌀밥, 바나나, 초콜릿 바. 그는 초콜릿 바에 가장 많은 설탕이 들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정답은 그를 당황하게 했다. 150g의 흰쌀밥이 “티스푼 10개 분량”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건강한 식사’라고 믿어온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이 글은 영국에서 40년 가까이 한 동네를 진료해 온 가정의학과 전문의 데이비드 언윈 박사의 설명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보완하는 과학적 근거를 함께 정리한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핵심 메시지의 ‘큰 줄기’는 탄탄한 과학에 기대고 있지만, 일부 표현은 비유이거나 아직 논쟁 중인 영역이라는 점을 함께 알아두면 좋다.
1. 설탕만 문제가 아니다 — “전분은 손을 잡은 포도당”
많은 사람이 설탕은 멀리하면서도 빵, 밥, 감자, 시리얼, 과일주스는 ‘건강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전분(starch)은 화학적으로 포도당(glucose) 분자가 길게 사슬처럼 연결된 형태다. 언윈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전분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포도당 분자들”이다.
입속 침의 효소(아밀라아제)와 소화 과정이 이 사슬을 끊어내면, 손을 놓은 포도당이 ‘자유로운 당’이 되어 혈류로 들어간다. 그래서 단맛이 나지 않는 흰빵 한 조각도 몸 안에서는 결국 당으로 바뀐다. “달지 않으니 당이 아니다”는 직관이 틀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 혈당 지수(GI)보다 혈당 부하(GL) GI는 같은 양의 탄수화물이 순수 포도당 대비 혈당을 얼마나 올리는지를 비교한다. 반면 혈당 부하(Glycemic Load)는 ‘실제 먹는 1인분의 양’까지 반영하므로 일상 식단을 판단하는 데 더 실용적이다. 예컨대 수박은 GI가 높아도 대부분 수분이라 한 조각의 혈당 부하는 크지 않다. |
2. 인슐린의 두 얼굴
혈당이 오르면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어 에너지로 쓰게 하는 ‘고마운’ 호르몬이다. 고혈당은 혈관 내벽(글리코칼릭스라 불리는 미끄러운 보호막)을 비교적 빠르게 상하게 하므로, 인슐린이 당을 치워 혈관을 보호하는 셈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자주, 많이 먹을 때 생긴다. 다 쓰지 못한 포도당은 안전한 저장 형태인 ‘지방’으로 바뀐다. 혈관을 떠도는 당으로 두는 것보다 지방으로 저장하는 편이 몸에는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방은 복부와 —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간에 — 쌓이기 시작한다.
3. 침묵하는 지방간 — “간의 긴 침묵의 비명”
과잉 포도당이 간에 차곡차곡 쌓이면 지방간이 된다. 무서운 점은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뉴캐슬대학의 로이 테일러(Roy Taylor) 교수가 “간의 긴 침묵의 비명(the long silent scream from the liver)”이라 부른 이 단계는 평균적으로 10년 가까이 본인도 모르게 진행될 수 있다.
실제로 비알코올성 지방간(현재는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 MASLD’로 부른다)은 선진국 성인의 약 4명 중 1명꼴로 추정될 만큼 흔하다. “술도 안 마시는데 간 수치가 왜 이렇게 높지?” 하는 경우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4. 지방간에서 당뇨까지 — 끊김 없는 연속 과정
지방이 쌓인 간과 췌장은 도미노처럼 다음 단계를 부른다. 한 칸씩 따라가 보자.
1. 지방간 → 인슐린 저항성. 지방이 낀 간은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한다. 같은 혈당을 처리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해진다.
2. 보상성 고인슐린혈증. 췌장은 부족분을 메우려 인슐린을 더 쥐어짠다. 한동안은 혈당이 ‘정상’으로 유지되지만, 물밑에서는 이미 이상이 진행 중이다.
3. 췌장의 지방 침착. 지방간이 오래되면 췌장에도 지방이 끼면서 인슐린 생산 능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4. 제2형 당뇨병. 결국 혈당 조절에 실패하는 시점이 온다. 이때는 이미 ‘상류’에서 오래 문제가 누적된 뒤다.
| 왜 일찍이 중요한가 언윈 박사가 진료 환자들을 관찰한 바로는, 이 연속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저탄수화로 방향을 틀느냐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당뇨 전단계에서 시작하면 정상 혈당 회복률이 높고, 진단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확률은 점점 줄어든다. “제때 손쓰면 아홉을 구한다”는 옫말이 여기에도 통한다. |
5. 당뇨는 ‘혈당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2형 당뇨는 단순한 혈당 이상이 아니라 전신 대사질환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과 위험이 함께 높아진다.
• 심혈관질환 — 고혈당이 누적되면서 동맥이 손상된다(당뇨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
• 지방간과 그 진행(섬유화 등).
• 여러 종류의 암 위험 증가.
•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감소.
| ‘설탕 음료와 암’ 통계, 어떻게 읽을까 인터뷰에서 언급된 “하루 100mL의 설탕 음료가 전체 암 위험을 약 20% 높인다”는 수치는 실제 연구(프랑스 NutriNet-Santé 코호트, BMJ 2019)에서 나온 것이 맞다(정확히는 약 18% 증가). 다만 이는 인과관계가 아닌 관찰적 연관성이며, 절대 위험 증가폭은 생각보다 완만하다(예: 5년간 1,000명당 22명 → 26명 수준). 흠러리는 통계는 경각심을 주기에는 충분하지만, 각 수치를 인과적·누적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 |
6. 인슐린 저항성과 신장 — 가장 이른 경고 신호
인슐린 저항성이 생겼다고 해서 그 즉시 신장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슐린 저항성은 신장 혈관이 손상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혈당이 정상이어도 다음과 같은 변화가 물밑에서 진행될 수 있다.
• 고인슐린혈증, 만성 염증, 산화 스트레스, 혈관 내피 기능장애의 시작.
• 신장 사구체 모세혈관의 일산화질소(NO) 생성 감소 → 혈관 확장 기능 저하(이 단계는 가역적일 수 있음).
• 사구체 내압 증가로 인한 ‘과여과(hyperfiltration)’ — 초기엔 오히려 eGFR이 정상~높게 나오기도 한다.
• 진행되면 미세알부민뇨 → 사구체 구조 변화(기저막 비후, 사구체 경화) → 만성 신장질환(CKD)으로 이어지는 연속선.
| 핵심 구분 “인슈린 저항성 = 신장 손상”이 아니다. 정확히는 ‘인슈린 저항성 → 내피 기능장애 → 사구체 과여과 → 미세알부민뇨 → 만성 신장질환’이라는 연속선 위에 있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그래서 혈당이 정상이어도 허리둘레·지방간·혈압·소변 알부민 검사가 중요하다. 대사증후군 환자에서 미세알부민뇨는 심혈관·신장질환의 가장 이른 경고신호 중 하나로 여겨진다. |
7. 내 몸 상태를 점검하는 법
(1) 허리둘레 < 키의 절반
줄자 대신 끈 하나면 충분하다. 키만큼 끈을 자른 뒤 반으로 접어, 그 절반이 배의 가장 굵은 부분을 ‘여유 있게’ 감을 수 있어야 한다. 즉 허리둘레가 키의 1/2 미만이면 양호하다. 예) 키 170cm → 허리 85cm 미만, 키 185cm → 약 92cm 미만.
이 ‘허리둘레÷키(WHtR)’ 0.5 기준은 단순한 민간요법이 아니다. 30만 명 이상을 분석한 메타분석에서 WHtR이 BMI(체질량지수)보다 당뇨·고혈압·심혈관 위험을 더 잘 가려낸다는 결과가 보고됐고, 유럽비만학회도 선별 도구로 권고한다. 같은 체중이라도 ‘어디에’ 지방이 붙었는지가 중요하며, 팔다리보다 복부 지방이 대사 위험을 더 잘 반영한다.
(2) 당화혈색소(HbA1c) 읽는 법
HbA1c는 지난 2~3개월간의 평균 혈당을 보여주는 수치다. 일반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 구분 | % 기준 | mmol/mol |
| 정상 | 5.7% 미만 | 39 미만 |
| 당뇨 전단계 | 5.7% – 6.4% | 39 – 46 |
| 당뇨병 | 6.5% 이상 | 48 이상 |
* 진단과 해석은 반드시 의료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공복혈당, 인슐린 수치, 간 수치(GGT 등)도 함께 보면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8.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언윈 박사가 환자에게 권하는 식사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무엇을 빼느냐’보다 ‘무엇으로 채우느냐’에서 시작한다.
먼저 채울 것 (단백질 + 지방 + 녹색 채소)
• 달걀, 생선, 고기, 닭고기 등 충분한 단백질.
• 녹색 채소를 넉넉히 — 그리고 맛있게(올리브유, 버터, 풀팻 마요네즈 등 건강한 지방 활용).
• 가공이 적은 ‘진짜 음식’ 위주로. 포장지 뒷면의 탄수화물 함량을 확인하는 습관.
줄일 것
• 설탕 음료, 과일주스, 스무디 — ‘과일’이라는 단어의 후광에 속지 않기.
• 시리얼, 흰쌀밥, 흰빵, 감자, 과자, 초가공식품.
| ‘티스푼 설탕’ 차트는 비유임을 기억하세요 흔쌀밥 “티스푼 10개” 같은 표현은 해당 음식의 혈당 부하를 설탕 스푼으로 환산한 소통 도구일 뿐, 밥에 실제 설탕이 10스푼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또 양(1인분 크기)과 개인의 인슈린 감수성·활동량에 따라 실제 영향은 달라진다. 오해를 피하려면 이 도구는 ‘서로 비교하고 경각심을 갖기 위한 장치’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
9. 과학적으로 짚어둘 점 (균형 잡힌 시선)
이 이야기의 큰 줄기는 근거가 탄탄하지만, 모든 문장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디까지가 강한 근거이고, 어디부터가 비유나 논쟁 영역인지’를 구분하면 더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근거가 비교적 탄탄한 부분
• 복부비만 ↔ 지방간 ↔ 인슐린 저항성의 연결, 그리고 지방간이 제2형 당뇨 위험을 높인다는 점(로이 테일러 교수의 ‘트윈 사이클’ 가설과 일치).
• 체중 감량과 탄수화물 감소가 혈당·간 수치·혈압을 개선한다는 점.
• 가당 음료의 과다 섭취가 대사질환 위험과 연관된다는 점.
• 허리둘레÷키 0.5 기준의 유용성(대규모 메타분석으로 뒷받침).
실제 데이터지만 ‘맥락’이 필요한 부분
언윈 박사의 임상 성과(당뇨 전단계의 약 93%가 정상 혈당 회복, 제2형 당뇨의 약 46%가 약물 없는 관해)는 실제로 BMJ Nutrition, Prevention & Health(2020)에 동료심사를 거쳐 발표된 수치다. 다만 이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저탄수화물을 선택한, 동기가 높은 환자들’을 관찰한 진료 데이터다. 논문 저자들 스스로도 선택 편향 가능성을 명시했다. 따라서 ‘누구나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참고: 인터뷰 중 “조기 진단 시 73%”로 언급된 수치는, 발표 논문 기준으로는 ‘진단 첫 해에 저탄수화물을 시작한 경우 약 77% 관해’에 더 가깝습니다.
논쟁적이거나 과장될 수 있는 부분
• “모두에게 저탄수화·케토가 최선” —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지중해식, 열량 제한, 완전 식단 대체법(DiRECT 연구) 등 다른 방식도 아풜를 달성한다. 개인 환경·기호·지속 가능성이 관건이다.
• 밥·감자·바나나를 사실상 설탕과 동일시 하는 프레이밍 — 혈당을 올리는 건 맞지만, 이 음식들은 식이섬유·미량영양소·저항성 전분 등도 함께 지닌다. 영양적 차이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표현은 주의가 필요하다.
• 케토식의 인지기능·정신건강 효과 일반화 — 영양정신의학 분야는 흥미롭게 부상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의 연구다. “집중력이 좋아졌다” 같은 개인 경험과 확립된 임상 근거는 구분해야 한다.
• 이해관계 고지 — 원본 영상 중 외인성 케토(exogenous ketone), 건강 검진 서비스, 커피 등은 진행자가 투자했거나 광고한 상업 콘텐츠다. 임상 근거가 아니므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
또한 “관리되지 않은 당뇨 1년당 수명 100일 손실”, “초가공식품으로 인한 1인당 추가 세금” 같은 수치는 영국 정부·단체 추정치로 인터뷰에서 인용된 것이며, 출처와 계산 전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근사치’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10. 지식보다 어려운 것 — 행동을 바꾸는 심리학
아무리 옳은 정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언윈 박사의 아내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젠 언윈(Jen Unwin)은 변화의 동력을 ‘죄책감’이 아니라 ‘희망과 구체적 목표’에서 찾는다. 그가 정리한 ‘GRIN’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G(Goal) 목표: ‘1년 뒤 가장 잘 됐을 때’를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살을 빼고 싶다’보다 ‘계단을 숨 차지 않고 오르고 싶다’처럼.
2. R(Resources) 자원: 과거에 도움이 됐던 경험·지식·사람들을 떠올린다.
3. I(Increments) 작은 단계: 오늘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작은 한 걸음을 정한다.
4. N(Notice) 알아차림: 잘 되고 있을 때 몸·기분·에너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기록한다.
| 주변 사람이 걱정될 때 사랑하는 이가 잘못된 습관으로 향하고 있다면, ‘감시·비난·통제’는 종종 숨김과 거짓말을 부른다. 효과적인 건 부드러운 지지와 인내다. 또한 일부 사람에게 음식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초가공식품 중독’에 가깝다. 이때는 수치심이 아닌 이해와 전문적 도움이 필요하다. |
마치며 — 오늘의 작은 선택
우리 각자에게는 여러 갈래의 ‘건강 미래’가 있다. 어느 길로 갈지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정해진다. 끈 하나로 허리둘레를 재보는 일, 단맛이 없어도 빵이 결국 당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 아침을 ‘설탕에 설탕을 더한’ 식사로 시작하지 않는 일 —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10년 뒤의 간과 췌장, 그리고 신장을 지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하나의 실험으로 바라보되 반드시 ‘측정’하라. 혈압이든 체중이든 당화혈색소든, 무언가를 재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인다.
| 면책 고지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의학적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특히 당뇨·고혈압 약물을 복용 중인 분이 저탄수화 식단을 시작할 때는 저혈당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식단·운동·약물 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세요. |
출처: 데이비드 언윈(David Unwin) 박사 인터뷰(Diary of a CEO) 요약 및 관련 동료심사 연구—BMJ Nutrition, Prevention & Health(2020), NutriNet-Santé 코호트(BMJ 2019), 허리둘레÷키 메타분석(Ashwell 등) 등을 토대로 재구성.
서인근 의학박사
외과 전문의 · 건강 콘텐츠 크리에이터
의학 48년 · 외과 43년 · 항문외과 33년. 수술실에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진짜 건강'을 연구합니다. 우리 몸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깨우는 생화학적 통찰! 여러분의 일상을 바꿀 실질적인 건강 정보를 내 가족을 위하는 진솔한 마음으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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